고인의 얼굴을 AI로 되살려도 될까? 배우·유족·제작사가 확인할 권리 기준
고인이 된 배우의 얼굴과 연기를 인공지능으로 재현해 광고나 영화에 출연시킬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유족이 동의하면 가능하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유족의 동의 여부와 별개로 누가 어떤 권한을 갖고 있는지, 무엇을 얼마나 오래 사용할 수 있는지, AI가 만든 결과물의 성격은 무엇인지 나눠 살펴봐야 합니다.
이 문제는 해외 유명 배우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국내 광고 제작사, 영화·드라마 제작진, 배우와 유족 역시 앞으로 디지털 초상과 음성, 연기 데이터를 계약 대상으로 다뤄야 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화제성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누구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가’와 ‘동의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입니다.
확인된 사례: 그레타 가르보가 AI 광고에 등장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고인이 된 배우 그레타 가르보를 인공지능으로 재현해 볼베어링 광고에 등장시킨 사례를 보도했습니다. 확인되는 핵심은 고인의 디지털 재현물이 영화가 아닌 상업 광고에 활용됐다는 점입니다.
다만 해당 보도에 대한 현재 확인 범위에는 재현 과정의 세부 방식, 유족이나 다른 권리자의 승인 여부, 계약 조건, 사용 기간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사례를 근거로 ‘유족이 동의했다’거나 ‘이런 방식의 사용이 법적으로 허용된다’고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 사례가 던지는 질문은 분명합니다. 고인의 모습을 광고에 사용할 때 동의의 주체는 누구이며, 얼굴과 음성, 과거 연기의 재현을 하나의 권리로 묶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왜 유족 동의만으로 끝나지 않을까요?
AI로 배우를 재현하는 작업에는 여러 요소가 한꺼번에 들어갑니다. 얼굴의 형태와 움직임, 목소리, 생전 연기의 특징, 과거 출연작의 장면이나 녹음 자료, 새롭게 생성된 대사와 동작이 각각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 요소들은 모두 같은 권리로 처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얼굴과 음성은 개인을 식별하는 요소로 다뤄질 수 있고, 기존 영화 장면이나 사진·녹음은 별도의 창작물 또는 이용 계약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영상 역시 제작 방식과 계약 내용에 따라 권리관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유족의 역할도 구분해야 합니다. 유족이 고인의 의사를 전달하거나 특정 권리를 관리할 수는 있지만, 유족이라는 지위만으로 모든 초상·음성·연기 자료의 이용 권한이 자동으로 하나의 주체에게 모인다고 전제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 계약에서는 권리자, 관리 주체, 승인 권한을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미국 사례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되는 이유
고인의 사망 후 얼굴이나 이름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문제는 국가와 관할권에 따라 보호 방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사망 후 퍼블리시티권의 존속 여부와 보호 범위를 주별 자료로 확인해야 하는 주제입니다. 따라서 해외 광고 사례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한국에서도 동일한 이용이 가능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배우 노동조합이나 업계 계약 기준 역시 참고 대상이 될 수 있지만, 해외 기준은 해당 국가의 협약과 법률 환경을 전제로 합니다. 한국 제작사가 해외 배우의 디지털 복제물을 사용하거나, 국내 배우의 재현물을 해외에 배포하려는 경우에는 대상 국가와 계약 구조를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초상과 인격적 이익, 퍼블리시티권, 저작권, 기존 출연 계약을 분리해 살피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특히 고인의 얼굴을 닮은 이미지를 만드는 것과, 생전 연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대사와 동작을 생성하는 것은 제작 과정과 법적 쟁점이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프로젝트는 관련 계약과 적용 법률을 기준으로 법률 검토를 거쳐야 합니다.
계약서에서 반드시 나눠 적어야 할 항목
AI 재현을 허용하는 계약이라면 ‘고인의 이미지 사용에 동의한다’는 포괄적인 문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최소한 다음 항목을 각각 구체화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 재현 대상: 얼굴, 이름, 음성, 말투, 신체 움직임, 과거 연기 스타일 중 무엇을 사용하는지
- 사용 목적: 광고, 영화, 드라마, 홍보 영상, 전시 등 어떤 형태인지
- 매체와 지역: 텔레비전, 온라인 플랫폼, 극장, 사회관계망서비스 등과 공개 지역
- 사용 기간: 캠페인 기간, 재게시 가능 기간, 계약 종료 뒤 보관·사용 방식
- 수정과 재편집: 대사 변경, 표정과 동작 수정, 다른 제품이나 장면에 재활용할 수 있는지
- 2차 사용과 추가 학습: 완성 영상을 다른 콘텐츠에 쓰거나, 제작 과정에서 생성 데이터를 추가 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지
- 보상과 승인: 일시금인지, 사용 범위에 따른 추가 보상인지, 최종 공개 전 승인 절차가 있는지
- AI 재현 표시: 시청자가 실제 생전 촬영본으로 오인하지 않도록 표시할지 여부
특히 광고와 영화는 사용 목적이 다릅니다. 광고는 특정 상품이나 브랜드의 추천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고, 영화는 등장인물의 서사와 연출 맥락이 중요합니다. 같은 얼굴을 재현하더라도 허용 범위와 검토 절차를 동일하게 설계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 독자가 확인할 실무 판단 기준
배우나 유족이라면 먼저 ‘누가 동의했는가’보다 ‘누가 어떤 권리를 관리하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동의서에 서명한 사람이 유족인지, 기존 출연작의 권리자와 별도 협의가 필요한지, 음성이나 과거 영상이 어디에서 제공되는지 확인하는 방식입니다.
제작사라면 AI가 만들어낸 결과물만 검토해서는 안 됩니다. 학습이나 재현에 사용한 사진·영상·음성의 출처, 원본 자료의 이용 조건, 최종 결과물의 공개 범위를 기록해야 합니다. 제작 도중 새로운 용도가 생기면 기존 동의 범위에 포함되는지도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일반 시청자도 광고나 영상 속 인물이 실제 생전 촬영본인지, AI로 새롭게 만들어진 모습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AI 재현 표시 여부는 단순한 기술 안내를 넘어 고인의 의사와 유족의 명예, 시청자의 오인 가능성과 연결되는 문제입니다. 공개 방식과 표시 기준을 계약 단계에서 정해두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결론
고인의 얼굴과 연기를 AI로 되살리는 일은 단순한 복원 기술이 아닙니다. 얼굴·음성·연기·기존 영상·새로 생성된 결과물이 서로 다른 권리와 계약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레타 가르보의 AI 광고 사례는 고인의 디지털 재현이 상업 현장에 등장했다는 점을 보여주지만, 그 자체로 유족 동의나 권리 귀속, 법적 허용 범위를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 비슷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면 유족 동의만 확인할 것이 아니라 권리 관리 주체, 사용 목적, 매체, 기간, 지역, 재편집과 2차 사용, 보상, AI 재현 표시를 문서로 구체화해야 합니다.
앞으로 중요한 기준은 ‘얼마나 그럴듯하게 되살렸는가’가 아니라 ‘누가 허락했고, 어디까지 허락했으며, 시청자에게 어떻게 알렸는가’가 될 것입니다. 배우·유족·제작사 모두 기술 시연보다 권리 범위와 공개 절차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